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뻐워하고 즐거워하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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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사랑 작성일21-01-29 16:54 조회700회 댓글0건본문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참조:1베드 1, 16).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대로 성덕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덕의 소명에 관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통하여 현재를 직시하시고 다양한 현대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 부름에 응답할 것인지, 참된 의미의 성덕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성덕의 의미 뿐 아니라 성덕의 실천을 크게 강조하심으로써 신앙인의 실천적 소명을 다시 한 번 울려 퍼지게 하신 것입니다.
먼저 성덕의 소명은 신앙인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시면서 소명에 응하는 방법을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즉 성덕의 소명에 응하는 것이 주교, 사제, 수도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생활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봉헌 생활자입니까? 자신이 봉헌한 대로 기쁘게 살아가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혼인한 사람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직장인입니까?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어머니나 아버지입니까? 할머니나 할아버지입니까? 아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권위자입니까? 자신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14항). 교황님은 이처럼 성덕의 소명이 신앙인의 일상생활과 괴리되지 않고 현대인들이 성덕의 길에서 세례 은총의 열매 맺기를 간청하십니다.
두 번째는 성덕의 실천으로 교황님은 그 실천적 측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침묵을 사랑하지만 다른 이들과 교류는 회피하는 자세, 휴식만 취하려 들고 활동은 거부하는 자세, 기도를 추구하지만 봉사는 폄하하는 자세는 건강하지 않은 자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의 우리 삶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스며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동 속에서도 관상을 실천하고 책임감 있고 관대하게 우리 고유의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26항). 이것은 교황님의 관상적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황님의 실천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성덕의 기준을 마태오 복음 25장에서(31-46절 참조) 찾는 것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95항). “하느님 눈에 드는 거룩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 복음 구절에서 우리가 그에 따라 판단 받게 될 올바른 행동 규칙 하나를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교황님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덕은 ‘우리 이웃을 향한 자비의 활동’이라고, 또 한 번 실천을 강조합니다(106항 참조). 행함이 우리의 예배 행위보다 중요하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희생 제물과 밖으로 드러나는 봉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을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희생 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 신심을 북돋우고 이웃에게 보탬을 주고자 당신께 그 희생 제물을 봉헌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을 비참에서 구하는 자비야말로 하느님께서 더욱 기꺼이 받으시는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 이웃의 행복에 더욱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입니다.”(신학대전 Ⅱ-Ⅱ,q.30. ad 1.).
아울러 교황님은 이 책에서 작금의 향락주의와 소비주의가 우리를 미혹에 빠뜨릴 수 있다고, 현대적 상황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경고하십니다(108항 참조). 오늘날 자본주의의 폐단이 문제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쾌락에만 빠져들 때 결국 자기 자신과 자기 권리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기에 이르고 삶을 즐길 여유 시간만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박한 생활을 증진하지 않는다면 소비사회의 수요 열풍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피상적 정보, 즉각적 커뮤니케이션, 가상현실 등에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통 받는 현실에서 멀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이 책이 쓰여진 2018년에 이미 오늘의 현실을 꿰뚫어 보신 놀라운 통찰로, 우리는 2020년 펜데믹 속에 교황님의 가르침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겠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덕의 소명에 관한 권고를 읽어나가는 동안 교황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실천가이신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상적인 성덕의 의미보다 구체적인 현 상황에 맞는 성덕을, 성덕이 곧 애덕임을 강조하시고, 관상적 활동, 활동적 관상의 모델을 제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대 유행으로 비대면을 권고하고 있는 상황은 직접 서비스를 지원 받아야 하는 이들의 고립과 소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해야하는 시설은 더욱 사람이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은 비대면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낯선 생활방식을 선택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원자로서 그 단절까지도 당사자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채워 드려야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대면이 이웃과의 단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성찰의 시간, 즉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영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성덕은 다른 이들과 나란히 함께 하는 공동체 여정에서 성장합니다”(141항)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이러한 단절과 환난 속에서 우리의 대상자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끝으로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우리가 사회복지현장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님의 권고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교황님의 관상적 활동, 활동적 관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안전을 담보한 지역사회, 좀 더 작은 단위의 동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봅니다. 인근의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고, 시설에서 먼저 나누며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생각해봅니다.
둘째,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하고, 이들의 삶을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중증장애인들의 삶 한 가운데 서서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디자인해 봅니다. 바쁘게 제공되기만 했던 서비스지원 방식에서 긴 호흡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셋째, 당사자들의 개별지원 방식을 삶 중심 지원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당사자들이 시설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외적으로 보여 지는 실적위주의 프로그램 보다는 시설 밖, 동네주변의 안전한 곳을 찾아 자주 탐색하고 개인 활동을 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지역 안에서 당사자들의 삶 중심 계획을 일상에서 지원하여 존재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성찰의 시간과 대상자들을 위해 건강과 안전에 더욱더 힘쓰게 합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로 인하여 단절보다는 이웃의 소중함, 우리 동네 좁은 골목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대면 서비스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사회복지의 가치와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대면 언택트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더욱 단절과 소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사회복지 현장은 전문성과 헌신을 한층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지원자들은 지역 사회복지사들과 힘을 합하여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이겨 나갈 담론을 만들어 우리가 돌보는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교황님 말씀처럼 그들 가까이에서 나란히 함께 공동체 여정에서 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대로 성덕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덕의 소명에 관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통하여 현재를 직시하시고 다양한 현대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 부름에 응답할 것인지, 참된 의미의 성덕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성덕의 의미 뿐 아니라 성덕의 실천을 크게 강조하심으로써 신앙인의 실천적 소명을 다시 한 번 울려 퍼지게 하신 것입니다.
먼저 성덕의 소명은 신앙인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시면서 소명에 응하는 방법을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즉 성덕의 소명에 응하는 것이 주교, 사제, 수도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생활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봉헌 생활자입니까? 자신이 봉헌한 대로 기쁘게 살아가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혼인한 사람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직장인입니까?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어머니나 아버지입니까? 할머니나 할아버지입니까? 아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권위자입니까? 자신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14항). 교황님은 이처럼 성덕의 소명이 신앙인의 일상생활과 괴리되지 않고 현대인들이 성덕의 길에서 세례 은총의 열매 맺기를 간청하십니다.
두 번째는 성덕의 실천으로 교황님은 그 실천적 측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침묵을 사랑하지만 다른 이들과 교류는 회피하는 자세, 휴식만 취하려 들고 활동은 거부하는 자세, 기도를 추구하지만 봉사는 폄하하는 자세는 건강하지 않은 자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의 우리 삶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스며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동 속에서도 관상을 실천하고 책임감 있고 관대하게 우리 고유의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26항). 이것은 교황님의 관상적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황님의 실천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성덕의 기준을 마태오 복음 25장에서(31-46절 참조) 찾는 것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95항). “하느님 눈에 드는 거룩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 복음 구절에서 우리가 그에 따라 판단 받게 될 올바른 행동 규칙 하나를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교황님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덕은 ‘우리 이웃을 향한 자비의 활동’이라고, 또 한 번 실천을 강조합니다(106항 참조). 행함이 우리의 예배 행위보다 중요하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희생 제물과 밖으로 드러나는 봉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을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희생 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 신심을 북돋우고 이웃에게 보탬을 주고자 당신께 그 희생 제물을 봉헌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을 비참에서 구하는 자비야말로 하느님께서 더욱 기꺼이 받으시는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 이웃의 행복에 더욱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입니다.”(신학대전 Ⅱ-Ⅱ,q.30. ad 1.).
아울러 교황님은 이 책에서 작금의 향락주의와 소비주의가 우리를 미혹에 빠뜨릴 수 있다고, 현대적 상황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경고하십니다(108항 참조). 오늘날 자본주의의 폐단이 문제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쾌락에만 빠져들 때 결국 자기 자신과 자기 권리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기에 이르고 삶을 즐길 여유 시간만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박한 생활을 증진하지 않는다면 소비사회의 수요 열풍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피상적 정보, 즉각적 커뮤니케이션, 가상현실 등에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통 받는 현실에서 멀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이 책이 쓰여진 2018년에 이미 오늘의 현실을 꿰뚫어 보신 놀라운 통찰로, 우리는 2020년 펜데믹 속에 교황님의 가르침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겠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덕의 소명에 관한 권고를 읽어나가는 동안 교황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실천가이신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상적인 성덕의 의미보다 구체적인 현 상황에 맞는 성덕을, 성덕이 곧 애덕임을 강조하시고, 관상적 활동, 활동적 관상의 모델을 제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대 유행으로 비대면을 권고하고 있는 상황은 직접 서비스를 지원 받아야 하는 이들의 고립과 소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해야하는 시설은 더욱 사람이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은 비대면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낯선 생활방식을 선택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원자로서 그 단절까지도 당사자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채워 드려야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대면이 이웃과의 단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성찰의 시간, 즉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영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성덕은 다른 이들과 나란히 함께 하는 공동체 여정에서 성장합니다”(141항)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이러한 단절과 환난 속에서 우리의 대상자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끝으로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우리가 사회복지현장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님의 권고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교황님의 관상적 활동, 활동적 관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안전을 담보한 지역사회, 좀 더 작은 단위의 동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봅니다. 인근의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고, 시설에서 먼저 나누며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생각해봅니다.
둘째,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하고, 이들의 삶을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중증장애인들의 삶 한 가운데 서서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디자인해 봅니다. 바쁘게 제공되기만 했던 서비스지원 방식에서 긴 호흡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셋째, 당사자들의 개별지원 방식을 삶 중심 지원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당사자들이 시설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외적으로 보여 지는 실적위주의 프로그램 보다는 시설 밖, 동네주변의 안전한 곳을 찾아 자주 탐색하고 개인 활동을 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지역 안에서 당사자들의 삶 중심 계획을 일상에서 지원하여 존재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성찰의 시간과 대상자들을 위해 건강과 안전에 더욱더 힘쓰게 합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로 인하여 단절보다는 이웃의 소중함, 우리 동네 좁은 골목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대면 서비스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사회복지의 가치와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대면 언택트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더욱 단절과 소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사회복지 현장은 전문성과 헌신을 한층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지원자들은 지역 사회복지사들과 힘을 합하여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이겨 나갈 담론을 만들어 우리가 돌보는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교황님 말씀처럼 그들 가까이에서 나란히 함께 공동체 여정에서 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